인종, 패션, 체취, 식성, 말투 등 모든 면에서 다양한 이 나라에서 살면서 실감하는 또 다른 다양성 한 가지가 사과다. 미국의 마트에 가면 기본적으로 다섯 종류 이상의 사과가 진열되어 있고 연중 돌아가면서 스무 종류 이상의 사과를 파는 것 같다.
한국에서 가장 흔한 부사(Fuji)를 포함해서 Gala, Mcintosh, Honey crisp, Granny smith, Cortland, Pink lady, Golden delicious, Liberty, 등등 푸석함과 아삭함, 신맛과 단 맛, 단단함과 무름, 떫음과 촉촉함 등으로 이루어진 최소 4차원 이상의 좌표공간 내에 저마다 자리잡고 있다.
파운드당 1달러에서 4달러까지 폭넓은 가격대 만큼이나 그 생김새와 맛도 다양한 것이 이 나라 사람들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미국 사과의 다양성 만큼이나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이 우리나라 사과의 획일성이기도 하다
사과는 국내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대표과일이지만 서울의 마트에서 만나는 사과는 여름 한정 아오리사과를 제외하고 나면 거의 부사/홍로 밖에 없다.
실제로 부사는 국내 사과 생산의 65%를 차지한다고 한다. 6-70년대 이후로 저장성과 맛의 보편성 측면에서 상품성이 가장 뛰어난 부사 위주로 소품종 대량생산하는 방식을 추구하게 되었다고 한다.
달고 농익은 과일보다 청사과와 청포도처럼 푸릇푸릇한 과일이 내 취향이라 푸석한 느낌이 있는 한국의 부사를 그다지 즐겨먹지 않았었지만 미국의 넓은 사과스펙트럼 내에서 내 입맛에 딱 맞는 사과를 찾았고 (청사과와 적사과의 중간쯤 되고 매우 아삭한 Honey Crisp라는 품종) 덕분에 사과를 많이 먹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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