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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수 
  http://www.genijoon.com
  7년 전의 나보다
아래 글은 거의 6년 전,
<지구 반대편을 여행하는 법> 초고에 있었지만
"준수씨가 좀 더 나이 먹고 나서 싣도록 하죠" 라는 편집자의 코멘트와 함께 제외됐던 꼭지다.

심야에 쓴 감상적 일기와 어릴 때 진지하게 썼던 글이
태워버리고픈 부끄러움으로 변신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세상의 이치지만,
일단 그 때 원고 그대로 아래에 옮겨본다.

(장소는 '지구 최남단 ' 우슈아이아였다.
지구 땅'끝'에서 한 해의 '끝'을 보내는,,, 나름 감상적인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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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슈아이아에서 보냈던 2006년의 12월 31일.
"지구의 끝에서 보내는 한해의 끝" 이라는 것에 애써 의미를 부여하려 했지만,
이 작은 마을에는 연말 분위기가 나지 않아서 그런지,
아니면 "벌써" 24번째 맞는 연말이라 그런지 영 무덤덤하기만 하다.
맥주캔 하나 들고 바닷가에 혼자 앉아 12시를 기다리며 불꽃놀이라도 기대했지만,
해가 바뀌었음을 알려주는 건 부둣가의 배들이 울려대는 뱃고동소리의 불협화음뿐이었다.

지독하게 느리게 가는 시간에 화를 내던 시절도 있었다.
매년 연말에 연기대상 시상식과 보신각 종 치는 장면을 TV로 지켜보며 한살을 더 먹고 어른이 되어간다는 사실에 이유없이 기뻐하고 뿌듯해하던 시절 말이다.
생일날 밤에 잠들면서 어서 빨리 다음번 생일이 오길 바라던 기억도 생생한데,
그 때 그토록 바라던 어른, 20대의 대학생이 된 지금의 나는 절대로 그때보다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다.
매년 해가 바뀌어서  때가 되면 나이 한 살 더 먹는다는 것은 매월 카드결제일에 돈이 빠져나가는 것마냥 못마땅하기만 하다.
12월 31일과 1월 1일은 다른 363개의 날들과 다른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연례행사처럼 1년에 한번쯤은 이런 날이 와야 한다는 사실에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 같다.

나이를 한살 더 먹는 다는 사실이 더이상 축하할 일이 아니게 되어버린 20살 이후,
지나간 해의 달력을 떼어내고 새로운 해의 달력으로 바꿔 거는 속도가 어릴적 달력을 한 장 넘기던 속도와 비슷하게 느껴지면서,
이렇게, 나는, 점점, 어른이 되어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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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시 읽으면서 가장 거슬리는 부분은
과도한 '진지함'이 주는 민망함이나 고심해서 골랐던 단어의 유치함이 아니라
"24살"이라는 숫자다!

두번째로 거슬리는  부분은 '24살' 앞에 붙은 '벌써' 라는 부사!!
(따옴표를 씌운 의도는 알겠지만 희석되지는 않아...)





음악을 듣고서 울기도 했던 사춘기의 한가운데서 들은 카니발의 앨범은 나에게 어른의 노래였다.
"참 어렸었지, 뭘 몰랐었지 "라 노래하던 이적과 김동률, 74년생 두 '형'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땐 그랬지, 참 세상이란 정답이 없더군. 사는건 하루하루가 전쟁이더군"
이라고 노래했던 1997년에 그들은 우리 나이로 '고작' 24살이었다.

이 노래가 나왔을 때도
"어린 것들이 뭘 안다고 세상타령은.."
이라 힐난하던 서른살 쯤 먹은 형들도 있었겠지.
이적과 김동률은 16년 전에 쓴 가사를 보며 어떤 생각이 들까.






가끔 중요한 사실을 잊어버린다.
세월이 쌓이고 나이가 더해지면서
과거 '어렸던 나'에 대한 미련과 후회를
현재 '어린 사람'의 고민을 폄하하는 도구 사용한다.

스무살 나는 "세상에서 제일 중대한 연애'를 하고 있다고 소리쳐놓고
지금와서 스무살의 사랑은 사소한 것으로 치부해 버린다.

이제 삼십대가 된다며 사뭇 진지하게 인생이 어쩌고 저쩌고 들먹였던 나를 잊어버리고서
지금 나보다 어린 누군가의 푸념에는 "야, 그땐 다 그런 거야"라고 말해버린다.

종종 지나간 인생은 얼마나 쉬운지 잊어버린다.
나의 지나간 시간 속에 있는 어린 너의 고민과 걱정을 진지하게 생각하려 하지 않고
어릴 적 그렇게 듣기 싫었던,
그래서 나는 결코 하지 않으려 했던 ,
'너는 아직 어려서... 그때는 누구나 다 그런...'라고 말해 버리는 못난 나를 발견한다.

나중에 뒤돌아보기에는 다 뻔해보일지라도
누구에게나 지금 자신의 일이 가장 어려워보이는 법인데,
자신보다 어린 사람에게 "넌 아직 어려서 세상을 몰라"라고 말하는 것은 큰 모욕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적과 김동률도 지금 와서 저 가사를 본다고 해도 민망하지 않을 것이다.
나도 5년 전 벌써 25살 운운하던 글이 부끄럽지 않고.






만약 지금 책을 낸다면 이제 저 글을 실을 수 있을까
24살 때 쓴 글에서 24를 31로 바꾸면 되려나
그 사이 나는 얼마나 변했을까.




  관심    2014/01/03  
 '그땐 그랬지' 가사를 보며 비슷한 생각 했던 게 기억납니다. ^^
어쩌면 흐르는 시간에 대한 상념마저도 그저 태연하고 무디게 바라보는 무덤덤함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얇은 표면박이 되어 덮개로 끼어있을지도 모르죠?
  준수    2014/01/11  
 하하 언제나 "꿈보다 뛰어난 해몽"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게요 점점 무덤덤해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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