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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수 
  http://www.genijoon.com
  부산=서울


나의 30여년 역사를 장소에 따라 정리해 보면

부산   3년 (기억 안남)
일본   4년 (희미함)
부산 12년 (초중고)
서울 12년 (대학(원))


서울의 대학 기숙사에 들어간 것이 딱 12년 전 2002년 2월 마지막 날이었으니
(기억나지 않는 미지의 유아기를 제외하면) 이제 부산에서 보낸 시간과 서울에서 산 시간이 딱 같아졌다.
서울=부산=12년씩.


'부산'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국어교과서의 문학작품에서 작가들이 노래했던 '고향'같은 느낌이다.
자주 가지 못 하지만 부모님이 계시고,
어릴 적의 일기장이 가지런히 꽂힌 책장과 유치한 잡동사니로 가득한 책상이 놓인 '나의 방'이 있는 곳.
지난 10여년 동안 그곳의 변화나 발전과는 관계없이 나에겐 여전히 2002년의 마지막 모습으로 남아 있는 도시.
혹독한 서울의 겨울바람이 미처 닿지 못할 것 같은 남쪽나라, 따뜻한 나의 고향.

'서울'이라는 도시는 아직 나에게 '타향'이다.
저마다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 모여서 타향살이하는 곳.
누군가를 만나면 서로 고향을 묻고 그곳에 대해 이야기하는 곳.
우리말을 배우고 썼던 곳의 말투와 조금 다른 억양을 쓰려 노력하는 곳.
나의 늦은 귀가시간을 나무라는 이 없고 밤이 되면 혼자가 되는 곳.
그런 사람들이 벽 하나 사이에 두고 붙어 살면서 서로 인사하지 않는 곳.
갓 꺽곶이한 나뭇가지처럼 아직 뿌리는 내리지 못한 곳


홀로 서울 타향살이한 시간의 길이가 어느새
내 마음속 ''고향'이라 여기는 장소에서 살았던 시간만큼이나 오래되었다고 생각하니
거참 별 것도 아닌데 무언가 감회가 새로워진다.

몇년쯤 이곳에 더 살고 나면 서울도 고향처럼 느껴질까.





1.
(많은 경상도출신들이 그렇겠지만)
나는 이중적인 언어생활을 하고 있다.
고향친구, 학부친구들과는 부산사투리로 얘기하고
그 이후에 알게 된 사람들과는 서울말(처럼 보이려 애쓰는 무언가)을 쓴다.

지금은 누가 툭 건드리면 서울말이 나오지만
고향친구를 만나면 지체없이 부산말로 대화할 수 있다.

'고향'이라는 추상적인 감상에 비해
매일매일 부딪히는 현실의 언어는 적응이 훨씬 빨라서
이제는 가끔씩 듣는 순도 100%의 부산말이 오히려 어색하다.

수년 전 친구에게
"외국어로는 나의 미묘한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처럼
왠지 부산사투리로 말해야 솔직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던 것에 비하면 현저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나저나
같은 경상도사람끼리는
'애쓰는 서울말' 속의 경상도 억양을 쉽게 알아채는데 비해
서울사람들은 경상도인의 어색한 서울말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것 같다.



2.
부산에 좀처럼 내리지 않는 눈은 여전히 신기하다.
부산에서 평생 살아야 구경할 만큼의 눈을 하루만에도 볼 수 있는 서울 관악산 언저리에 지낸 지도 10년이 넘었지만,
(이 건물은 서울시내에 비가 올 때도 눈이 오곤 한다. 정말이다)
아직 눈이 오면 신난다.

오르막 위에 있는 연구실은
눈이 많이 오면 버스가 끊겨서 한참을 걸어내려와야 하지만,
일년에 한두번씩 (어쩔 수 없이) 뽀얀 눈을 밟으며 정문까지 걸어오는 밤길이 참 좋다.

아직 차가 없어서 눈이 싫어지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네.


3.
어릴 때 바다가 보이는 집에 살아서 그런지
바다는 고향 부산의 가장 선명한 이미지다.

서울의 "디폴트"는 바다가 없는 것이며 가끔 보는 바다가 특별한 것이라면,
나에게는 바다를 보는 것이 '디폴트' 상태고 내륙은 바다가 결핍된 상태다.

그나마 서울에 한강이라도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한강이 없는 서울은 얼마나 삭막했을지.




4.
'고향'을 가장 실감하는 시간은 역시
롯데를 응원하는 프로야구시즌이다.

20년 동안 우승 못하는 팀을 왜 이토록 한결같이 응원하고 있는지,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5.
좋다.
부산사람이라는 것이.
(루시드폴의 말처럼) 2개 국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이.
12년의 빈 시간 만큼 어릴 적 기억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내가 바라본 바다가 있고 '돌아갈 곳'이 있다는 느낌.
그리고 무엇보다 그리워할 곳이 있다는 것이.







  제환 삭제  2014/02/23  
 제주도 사투리까지 쓰는 나의 정체성은 더욱
흔들리고 있다.
  관심    2014/02/27  
 어릴적부터 서울에서, 보급형 주공아파트에서 살며, 평생을 그런그런 아파트 언저리에서 살아온 덕분에, 가끔 그리워할 '고향'과 '시골'이 있는 분들의 흙냄새 기억과 향수를 제 기억인양 훔쳐오곤 믿곤 합니다 ^^
  준수    2014/03/02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보다 언어가 하나더 늘어난 게 아니라?ㅎㅎ 나도 제주도 사투리 배우고 싶수깡
  준수    2014/03/02  
 앗 '고향'의 이미지지만 저도 내내 아파트에서만 살아서 흙냄새나는 고향은 아니랍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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