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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프롤로그: 떠날 이유, 떠나지 않을 이유
분류: 마르세유
이름: 준수 * http://www.genijoon.com


등록일: 2015-11-22 00:20
조회수: 1065


제목 없음

 

 

 

 

 

 

 

 

 

 

소식이 뜸했던 누군가를 떠올리며 '오랜만에 연락 한 번 해야지' 라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먼저 연락을 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0' 과 '1' 밖에 없는 디지털회로처럼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 사람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과 다를 바 없다.
일방적인 마음의 미동은 증거를 남기지 않으니
연락하려 생각만 한 것은 연락 하지 않은 것과 구별할 방법이 없어
똑같이 "0"이다.

 
아무리 생각을 많이 했더라도
때마침 먼저 연락을 해온 친구의 "넌 어쩜 그리 연락 한 번 없냐?"라는 핀잔 앞에서
연락하리라던 내 억울한 마음은 한낱 말 뿐인 변명이 되고 만다.

 

 

 

 

 

 

 

 

 

 

 

 

 

 

 


누구를 떠올리고 생각하는 기척이 자라나
귀찮음, 피곤, 상대가 바쁠까 걱정, TV보기, SNS 접속 등
급하지 않은 연락을 미룰 무궁무진한 핑계들을 넘고 넘어서
'1'이 되기 위한 문턱값을 넘게 되는 유일한 동력은 단지 안부묻기 뿐일지도 모른다.
반드시 해야하는 것이 아닌 대부분의 취미생활과 마찬가지로
여행을 가야할 이유는 몇 가지 밖에 없지만 가지 않을 이유는 수없이 많다.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시간과 돈이 필요하지만
그것을 가졌다고 해서 모두가 여행을 떠나는 것은 아닌 것처럼,
시간과 돈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일은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여행 계획을 세우고 나면
서울에서 능숙하게 버스에 오르고 노선도 없이 지하철을 환승하고 출구번호를 보지 않고 목적지를 찾아가는
익숙한 일상의 효율성이 새삼스럽게 소중하고 편안하게 여겨진다.
이곳을 제 발로 박차고 나가 미지의 세계와 불편함으로 뛰어들겠다는 나의 계획이 터무니없이 느껴진다.
 

 


여행 떠나기 전날 밤의 내 침대, 내 베개와 이불은 유난히 아늑해서
내일부터 이 잠자리를 두고 자발적으로 낯선 방에 몸을 누이기 위해
적지 않은 돈과 시간을 쓰겠다는 결심이 미친 생각 같아 보이기도 한다.

 

 

 

 

 

 

 

 

 

 

 

 

 

 

 

 

 

거창한 이유 없는 몇 번의 '터치'로 희박한 인간관계에 미약한 온풍을 기대하는 것처럼
번거로움과 불안을 구태여 안고서 일상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힘도 결국 소소한  이유들이다.
그 울타리는 얕지만 안과 밖은 '0'이 '1' 만큼이나 다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취미인 마라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아주 작은 이유'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이라고 했다.

 

만약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전력질주했으나 아깝게 버스를 놓쳤을 때의 허탈감에 이렇게 될 걸 괜히 뛰었나 싶기도 하지만,
뛰지 않았다면 뛰지 않은 것을 후회했을 것이다.
 
거절이 두렵지만 지금 고백하지 않으면 후회할지 모른다는 걱정이
훗날 돌아보았을 때 아찔할(혹은 안도할) 용기가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여행을 떠나는 것 사이를 오가는 on/off 스위치('여행의 지름신')의 작동은
버스를 향한 달리기처럼 짧고 가볍다.
그러나 일단 한 번 켜지고 나면 거꾸로 돌아오지 않는 인생의 어떤 톱니바퀴를 앞으로 하나씩 감을 만큼 육중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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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궁둥이
정말 공감되는 글입니다!!! 생각은 쉬운데 실천하기는 왜 이렇게 어려울까요 >_< 매번 퇴근 후 운동을 해보겠다는 결심만 하고 있네요. 이번엔 꼭! 실천을 해봐야겠어요.
2015-11-23
09:19:47
준수
감사합니다! 이런 글 하나 읽고서 생기는 의욕이 오래 가기 쉽지 않을 것 같지만,, 금요일쯤 되어서 소식을 알려주세요.ㅋㅋ
2015-11-23
11:19:49
관심
와~ 다시 시작이군요!! ^^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여행을 떠나는 것' 사이의 스위치가, 저렴한 항공권 구매 클릭에서 시작하는지, 아니면 웹서핑부터 시작하는지, 그 0과 1 사이의 어느 지점을 쪼개서 찾게 됩니다. 이미 마음이 움직인 것이 시작일지, 환불금액이 아까워서 무조건 가야할 상태가 시작일지 말이죠.

* 문득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einmal ist keinmal'이 떠올랐는데... 위 준수님 글에 딴지를 거는 것 같지만, 그런 이유는 절대 아닙니다 ^^
2015-11-23
13:58:17
준수
디지털 '0'과 '1' 사이에 중간단계가 없기 때문에 어떤 이유로든 '문턱값'만 넘으면 다 똑같은 1이 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ㅎㅎ
한 번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런 뜻이었던 것 같은데 어떻게 연상이 되신건가요?
2015-11-24
12:00:29
김은정(온리원)
우와. 책의 한 페이지를 읽는 것 같았어요. ^^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읽으려고 생각만 했는데, '0'에서 '1' 스위치 켜고 당장 읽어봐야겠어요. 긍정의 '1'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
2015-12-09
10:42:25

[삭제]
준수
안녕하세요. 아마 곧 책의 한 페이지로도 보실 수 있을 겁니다.ㅎㅎ
<달리기를....>은 독후감 게시판에도 썼지만 하루키 에세이 중에서도 가장 재밌에 읽은 책 중 하나에요.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그 어떤 주제에 대한 글보다 가장 하루키상의 개인적인 면모가 많이 드러나 있어서 좋았습니다.
2015-12-09
17:24:34
야율겔루
아르헨티나에가서 스테이크를 원없이 먹고 싶다는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욕망의 발현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게 되었고 이사이트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층버스 앞자리에 대한
이야기 부분에서 즐겨찾기에 등록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늘 감사하게 보고 있습니다. 인터넷에 흔히 널린 관광기가 아닌 진짜 여행기를
2015-12-16
09:07:47

[삭제]
준수
안녕하세요!
감사하고 뿌듯한 말씀이네요! 진짜 여행기로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5-12-16
10:33:01
임동준
요새 소프트웨어 개발을 배우고 있는 입장에서 0과 1의 차이가 깊숙히 들어오네요 ㅎㅎ
여행은 정말 떠나지 못할 이유가 더생기기전에 떠나야만 가능한 것 같습니다.
내년에 1년정도 세계일주를 계획하고 있는데, 준수님 글을 보니 더 빨리 떠나고 싶네요 ~
2015-12-25
07:33:09

[삭제]
준수
하하 감사합니다.
우와 1년 세계일주 계획! 궁금하네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소식을 들려주세요!
2015-12-28
12:55:54
힌사마
한 9년 전쯤 중동 여행을 준비하면서 처음 방문한 후 준수님 블로그를 마치 숨겨놓은 보물처럼 몰래몰래 꺼내보며 지냈어요. 그리고 새로운 여행을 준비할 때면 나만의 여행 바이블마냥 의지하고 따라했네요. 오늘도 또 하나의 여행을 꿈꾸며 자연스럽게 찾아왔는데 새로운 글이 올라와있어 너무 반가운 마음에 이렇게 한 줄 남기고 가요. 여행지만큼 나를, 내 생각을 볼 수 있는 여행을 보여주셔서 너무 고마워요.
2016-02-17
23:24:25

[삭제]
준수
안녕하세요! 9년이라니 정말 오래 되었네요. 이렇게 소식 들려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반갑습니다~
2016-02-22
17: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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