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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심심함의 종말
분류: 치앙마이
이름: 준수 * http://www.genijoon.com


등록일: 2015-03-01 23:54
조회수: 1969 / 추천수: 87


제목 없음

 

 

 

 

 

 

 

 

 

 

 

1.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나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고 항상 정보에 접속할 수 있다.
덕분에 우리가 얻은 편리함과 그것들이 생활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그 중 내가 가장 크게 느끼는 변화는  '심심함'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걸어가면서, 밥 먹으며,  버스와 지하철에서, 커피를 마실 때, 술을 앞에 두고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짧은 순간에도 스마트폰을 놓지 않는다.
지시된 작업을 마치면 원래 위치로 되돌아와 대기하는 로보트처럼
액정을 보고 터치하는 데 방해가 되는 상태가 종료되면 자동적으로 스마트폰을 꺼내서 누군가와 연결되고 정보를 내려받게 된다.

인간의 '디폴트 상태'가 '멍하게 있음'에서 '스마트폰을 봄'으로 바뀐 것처럼 말이다.

 

 

 

 

 

 

 

 

 

 

잠시도 심심할 틈을 주지 않는 스마트폰은
아무것도 안 할 시간, 고요한 시간, 멍 때릴 시간을 빼앗아가는 것 같다.

그 여백을 의미있는 몰입으로 채운다면 그 또한 유익한 일이겠지만
우리가 갖던 '부재의 시간'을 대신하는 것은 대체로
지금 꼭 보지 않아도 되는 뉴스와 지금 알지 못해도 무관한 누군가의 소식들이다.

 

 

 

 

 

 

 

 

 

 

 

 

특별한 일에 몰두할 때 활성화되는 뇌의 영역이 있는가 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게 있을 때 활발해지는 뇌 부위가 있다고 한다.
디폴트 네트워크(Default network)라고 불리는 이러한 뇌활동은
무언가에 집중할 할 때는 독립적이던 뇌의 여러 부위를 연결하는 연상작용을 촉진해서
새로운 통찰과  창의성의 원천이 된다고 한다.

상상력과 창조적인 사고는 오히려 뇌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때 생겨난다는 이야기.

 

 

 

 

 

 

 

 

 

이 스마트 시대에 남은 마지막 '무위의 보고(寶庫)',
어디든 연결되려는 욕망과 비자발적 '푸쉬'의 간섭이 아직 닿지 못하는 곳은 샤워하는 시간이다.
나의 경우 연구에서부터 여행기에 대한 아이디어 중에는 욕신 출신이 많은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샤워의 무위마저 빼앗아갈 방수스마트폰이 나온다면 사지 말아야 할지어다.)

 

"나는 정말 스마트폰을 갖고 싶지 않아요. 그것이 나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는 문제이기 때문이죠.
 만약 스마트폰을 가진 사람에게 10분의 여유가 있다면 어떨까요? 그는 아마 10분 동안 스마트폰을 들여다볼 거예요"

 그의 영화가 보여주는 하이테크적 세계와 달리 아직 스마트폰을 써본 적이 없다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말이다.
(출처: http://newspeppermint.com/2014/08/10/mabsence/)

 

 

 

 

 

 

 

 

 

 

 

 

 

 

 

 

 

 

 

 

 

 

 

 

 

 

 

2.

요즘 국제공항의 도착층에서 제일 붐비는 곳은 투어리스트 인포메이션이 아니라
현지 이동통신사의 '데이터 심(sim)카드' 판매창구다.

 

덕분에 해외여행 중에도 우물가 찾아 다니듯 무료 와이파이를 찾아 헤매지 않고도
서울에서와 다를 바 없이 친구, 가족과 상호 동등한 소통 능력을 유지하며
방콕의 전철 안에서도 왓아룬 사원 꼭대기에서도 반가운 까톡까톡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기술의 발전은 시공간의 제약을 무색케 한다.
이제 사람들은 국경과 바다를 초월하여 기존의 일상과 관계에 여전히 속해 있을 수 있으며
외국에 있으면서서도 동시에 한국에 있을 수 있다.

 

똑같은 이유로 여행과 일상의 간극이 메워진다.
여행을 떠나와서도 여전히 일상에 머무를 수 있다는 점은
'일상의 탈출'이라는 여행의 모토를 무색케 할지도 모르겠다.

 

 

 

 

 

 

 

 

 

 

 

 

 

 

 

 

 

 

 

 

제일 경치 좋은 곳에서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고 실시간 리플을 확인하는 것,
열대의 식당에 마주앉아서 각자의 카톡을 하는 것도,
사람마다 여행의 목적과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결코 비난할 대상은 아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일상에서도 여행에서도
'심심함'은 이제 스스로 능동적으로 만들어내야만 얻을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정보의 그물망에서 빠져나와 멍하게 창밖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텅빈 '부재' 의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
오히려 노력이 필요하다는 역설.

 

 

 

 

 

 

 

 

 

 

 

 

 

 

 

 

 

 

 

 

 

 

 

 

 

 

 

 

 

 

3.

인류학자 로버트 고든은 <인류학자처럼 여행하기>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방황하는 느낌이 들면 관찰력이 더 예민해진다.
    ...
    이렇게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자 기기 공세에 권태는 사치가 된다.
    지루함은 외부 세계에 대한 반응을 멈추고 내부 세계를 탐색하는 상태다.
    지루함은 혼자 힘으로, 자주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자극제가 된다.
    ...
    고독은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민감해지게 하니까 말이다.
    그렇게 사무쳐 오는 강렬한 감각은 기억 속에 경험을 아로새기는 역할을 한다.
    또 사물과 자기 자신과 관계에 대해 싶이 성찰하게 된다. 고독은 너무 지나칠 때를 제외하면 소중한 것이다."

 

 

 

 

 

 

 

 

 

 

 

 

 

 

 

 

 

빈둥거림은 여행을 비옥하게 한다.
여행 중에 감정의 역치가 낮아지고 사소한 자극에도 반응하는 것은
일상보다 훨씬 풍부한 시간과 공간의 여백 덕분이다.

 

노천카페에 앉아서 맥주 마시면서 하는 사람 구경,
경치 좋은 곳에서 아무 방해 없이 가만히 앉아있는 시간,
음악을 들으면서 끝없이 나타나는 낯선 풍경을 멍하게 바라보는 버스의 창가자리,
밤에 숙소 침대에 엎드려 일기를 쓰고 뒹굴거리는 시간들이야말로
여행을 일상과 다른 특별한 시간이 되게 증거들이자
여행의 부피를 채우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들이다.

 

 

 

 

 

 

 

 

일상에서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짧은 심심함을 참지 못하고 휴대폰을 꺼내 포탈 뉴스를 열어보게 된 것처럼
언제부턴가 여행 중에도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면서
데이터 로밍이 안되어 할 것도 없는 스마트폰을 나도 모르게 꺼내게 된 것같다.

 

 

여행을 떠나는 것이 훨씬 쉬워진 것도,
여행과 일상의 거리가 좁아진 것도 기술의 발전 덕분이다.

 

 

 

 

 

 

 

 

 

 

기술의 진보에 따른 여행방식의 비자발적 변화에 대한 가장 현명한 대처는
여행과 일상의 거리, '접속의 정도'를 능동적으로 조정하는 능력일 것이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폴 부르제의 격언처럼
생각하는 대로 여행하지 않으면 여행하는대로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폰을 꺼내지 않으려 애쓰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의 일종이지만
여행 중에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스마트폰을 보지 않는 오롯히 내 여행을 위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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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
소니 워크맨이 대중화될 때도 생겼던 고민이었던 것 같아요. 이어폰을 통해 무언가를 듣기 시작하면서부터 거리를 걷고 있어도 세상과 단절되고 사념의 여력은 사라지고 말이죠. 말씀하신 것처럼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이후 퇴근길에 하던 게임을 마저하기 위해 집에 들어가지 않고 정류장에 앉아 미션을 깨는 모습도 우스운 이야기도 아니네요.
예전에도 언급했듯, 저는 처음 여행을 떠나던 때부터 음악을 듣지 않았습니다. 내가 다시 올 수 있을지 어떨지도 모르는 곳에서, 그곳의 소리를 듣고 상념을 하지 못한다면 그게 무슨 여행인가 싶어서였죠.(물론 이 역시 취향이자 겉멋든 이기심일지도 모르지만 말이죠) 하지만 가족들과 여행을 다니며, 아내의 스마트폰을 빌려 날씨를 확인하고 지도를 검색하고 맛집을 체크하다가 문득 내가 있던 곳의 뉴스가 궁금해지는 요즘,,, 내가 진짜 여행을 하고 있긴 한가를 다시금 되묻게 됩니다. 다시금 세상과 '단절'되고, '고립'되며, 내 안에서 들리는 소리에 충실한 순간이 그리워지네요.
2015-03-02
14:28:24
김혜인
그렇네요. 고독과 아무것도 하지 않음도 이제는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게 되었네요. 여행의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거대하고 웅장한 것을 보고 체험하는 것보단, 스치듯 지난간 풍경과 관심을 두지 않았던 사물에 있더라구요. 스맛폰과 함께 한 여행에서는 그런 남음이 없었던거 같군요. 아까워라...
2015-03-03
12:09:00

[삭제]
김남진
중간중간에 인용하는 책 구절이나 이런 것 좋네요. 따로 이런 구절들을 메모해두나봐요. 글 쓰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매우 좋은 습관인 것 같네요. 저는 그렇지 못해서..글 중간에 있는 '고든'의 글을 매우 공감이 되네요. 혼자여행하면서 이런느낌들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해서 계속 혼자여행하게 되는데, 사실 주변사람들은 이런 즐거움? 을 잘 알지 못하는듯해요. 이런 여행지에서 다니면서 불현듯 스마트폰이 우리의 멍때릴 기회조차 앗아간다는 사색은 혼자만의 여행이 아니면 느끼기 힘들듯 해요.

여튼 잘 보고 있네요. 업뎃이 느려서 절필한줄 알았지요 :)
2015-03-08
12:28:09

[삭제]
그레이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5-03-08
14:58:35

[삭제]
준수
저도 여행 중에는 주로 장거리 버스나 기차 안에서만 음악을 듣습니다.
처음 TV가 나왔을 때 다들 멍하게 TV만 쳐다보고 있으니 사람들이 멍청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지만 결국 그런 일은 안 일어난 것 처럼
이것도 다 시대가 바뀌는 과도기적 상황에서의 기우일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
스마트폰의 '디폴트화'가 기우든 아니든 심심함을 얻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하는 건 맞는 사실 같아요.
여행 중에도 마찬가지고 말이죠!
2015-03-09
10:24:25
준수
네 책 읽고 마음에 드는 문장은 항상 메모해 두지요.
독후감 게시판의 역사 만큼이나 스크랩해둔 양도 이제 상당해서 큰 재산입니다.ㅎㅎ
그렇군요. 혼자가 아니면 그럴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는 말도 공감이 되는 것 같습니다.
//
저도 감사합니다!
2015-03-09
10:26:01
MNB
준수형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노라면, 1/3이 넘는 학생들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더군요. 사전을 찾는지도 모르겠지만, 대부분 다른 사람들과 카톡하거나 인터넷을 하거나 하더라고요. 저는 스마트폰이 주머니에 있으면 공부가 안 되서 비행기 모드로 해 놓고 사물함에 처박아 두곤 합니다. 다 살기 위한 발버둥이죠.
2015-03-11
00:06:09

[삭제]
준수
고마워요.
도서관에 가본지는 참 오래 되었네요.ㅋㅋ
그렇지만 연구실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자리에서, 회의 중에도, 스마트폰 하는 사람이 많은데요ㅡ
위 댓글에서 얘기한 TV에 대한 기우처럼 도서관에서 공부에 대한 집중력 및 공부양이 줄어들어서 부정적 결과를 낳게 되지는 않을 것 같기도 하네요.하하
2015-03-11
13:18:39
임동준
확실히 저도 군대 전역한지 1달도 안됬는데, 나오고 나니 책을 읽거나 사색하는 시간이 확 줄어드는 것 같애요.
진짜 이제는 정보와 볼 것들의 범람이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는데, 너무 우리가 보고 듣는 것만으로 생각하게 된다면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린 소설들이 떠오르는건 너무 우려일까요? ㅎ
준수님 글 덕분에 오늘은 스마트폰 내려놓고 책읽으며 군대에서 사색하던 때를 기억해봅니다! ㅎ
2015-03-11
22:04:47

[삭제]
준수
저도 요즘 풍경을 보면서 21세기 디스토피아가 있다면 정보가 통제된 조지오웰의 1984 세계가 아니라
말초적인 재미만 넘쳐나서 아무도 진실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헉슬리의 '멋진신세계' 같은 모습일 거라는 생각이 종종 들지만,
역시 위에서 이야기한대로 기우겠지, 라는 생각(과 바람)이 듭니다.ㅋㅋ
그렇군요. 군대야말로 스마트 세계에서 청정지역 같은 존재였군요! 하하
2015-03-12
11:18:59
에스뗄
가끔은 스마트폰 없는 세상에 살고싶어요.
보고싶지 않은 정보야 제가 거르면되고
sns를 잘 하지 않는편이라 제 개인제삶은 스마트폰에 자유로운데..
카톡은 정말이지..전 개인적인 일을할땐 주로 꺼놓는편인데
켜자마자 울리는 메세지들..때론 미안해 해야하고 변명아닌 변명을 해야하고..
여행까지 스마트폰에 매여있기 싫어요.
여행중엔 인터넷도 지인들과의 연락도 잠시 접어요.
아무래도 전 아날로그적인 삶이 더 좋은가봐요^^
2015-03-13
21:56:49

[삭제]
준수
전 '카톡 잘 안 하는 사람'으로 보이려 약간 노력하는 것 같아요.
아직 본격 사회생활이 아니라 그럴 수 있는 처지인 것이 다행이기도 하고 말이죠.
여행은 순전히 제 마음이니까 '하지 않을 수 있는' 선택권이 있어 다행인 것 같습니다
2015-03-16
18:2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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