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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공학자처럼 여행하기 (재미없음 주의)
분류: 방콕
이름: 준수 * http://www.genijoon.com


등록일: 2015-06-29 00:42
조회수: 1524 / 추천수: 103


<인류학자처럼 여행하기>라는 책에서

 

 

 

 

 

 

 

 

 

 

<인류학자처럼 여행하기>라는 책에서
저자 로버트 고든은 인류학자야 말로 최고의 여행자집단이라고 했다.

 

현지답사와 참여관찰을 통해 현지인과 깊이 소통하며 객관적인 시선으로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려 노력하고
식사와 위생문제가 여의치 않은 오지 부족마을에서 장기 체류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겉핧기가 될 수 밖에 없는 단기 여행과 인류학적 현지관찰은 가장 반대되는 여행의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인류학자의 대척점에 있는 여행자집단은 ('최악'은 아닐지언정)
공학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단히 공학이란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어려운 완벽한 답 대신 '최적의 해'를 찾는 과정일 수도 있다.
목적함수 f(x,y,,)를 최대화 또는 최소화하는 변수 x,y,,,,의 최적값을 찾는 작업.

 

여행은
낯선 환경에서 입력되는 정보를 처리하며 빠른 판단을 내려야 할 기회가 많기 때문에
세상을 기계적으로 바라보고 정량화하는 공학적 사고방식을 발휘(?)할 기회가 많은 시간이다.

 

 

 

 

 

 

 

 

 

 

 

 

 

 

 

 

 

1.

비행기 추락사고 소식을 듣고 나면 비행기 타는 것이 겁나기도 한다.
비행기를 탄 총 횟수가 점점 늘어날수록 이러다가 한 번쯤은 추락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걱정이 커지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확률론의 독립사건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달랜다.


2할 5푼 치는 타자가 세번째 타석까지 범타로 물러났다고 4번째 타석에서 안타칠 확률이 더 높은 것은 아니다.
심리적, 상황적 변수를 제외한다면 매 타석 안타를 치는 것은 서로 영향을 주지 않는 '독립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통계적으로 안타를 칠 확률은 매 타석 동일하게 1/4인 것이다.

 

 

 

 

 

 

 

 

 

 

 

 

 

 

 

 

통계적으로 비행기 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p 라고 하면
내가 탄 비행기가 추락할 확률도 지금까지 탄 횟수와 관계없이 매번 p이라고 생각하며 안심하는 나를 발견한다.
('평생 비행기 사고로 죽게 될 확률'은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그러고 보니 내가 탄 비행기가 사고기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잠시 접더라도
비행기를 탈 때마다 매번 '죽음'에 대해 잠시마나 생각하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비공학적인지도 모르겠다)

 

 

 

 

 

 

 

 

 

 

 

 

 

 

 

2.

방콕에는 '아이스몬스터'라는 유명한 빙수가게가 있다.
수북하게 쌓은 우유빙수 위에 과일토핑을 올려준다. (망고토핑이 제일 인기)

 

빙수를 먹으며 주변을 둘러보니
옆 자리에 앉은 두 사람은 작은 컵 2개(2 x 65바트)를 시켜서 각각 다른 토핑을 올려서 나눠 먹고 있고
또 다른 테이블의 커플은 큰 컵 1개에 두 가지 토핑(105바트)을 올려서 같이 맛보고 있었다.

 

비슷한 목적을 위해서 서로 다른 선택을 내린 사람들을 관찰한 후 아주 짧은 시간동안 나는 머릿속에서
"얼음 양 대비 토핑의 양이 많은 것"을 더 맛있는 기준으로 가정하고 둘 중 어느 팀이 더 효과적인 판단을 했는지 생각하게 된다.

 

 

 

 

 

 

 

 

얼음 위에 올라간 과일토핑의 두께가 일정하다고 가정하면 토핑의 양은 표면적에 비례하므로 크기r의 제곱에 비례하고,
얼음의 양은 크기의 세제곱에 비례하므로 "얼음 대비 토핑의 양"은 크기에 반비례하게 된다.
더 작은 컵을 시킬수록 얼음대비 토핑의 양이 많아지는 셈이다.

 

작은 컵과 큰 컵에 담긴 얼음의 양이 가격에 비례한다고 생각하면
작은 컵 2개를 시킨 것이 더 효과적인 판단이라는 결론.

 

이런 오지랖 넓은 생각에 이어서
(수박의 껍질 두께는 크게 차이 안 난다면) 작은 수박보다 큰 수박이 부피대비 먹을 것이 많다는 (=껍질의 비율이 낮다는)
모두가 이해하기 쉬운 예를 떠올린 후에는 좀 더 뿌듯하게 빙수를 먹을 수 있었다.

 

 

 

 

 

 

 

 

 

 

 

 

 

 

3.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자 이내 치앙마이 구시가지를 벗어나 쭉 뻗은 길을 달린다.
살짝 배어나온 땀이 상쾌한 바람에 금새 마르는 기분이 좋아서 더욱 힘차게 페달을 밟는다.

 

하지만 곧 땀이 나고 덥거나 맞바람이 너무 세게 느껴져서
기분이 '딱 좋은' 순간은 아주 짧다는 생각이 든다.

 

 

 

 

 

 

 

 

 

 

 

 

 

 

 

 

 

그와 동시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시간에 따른 함수들, 몸에서 발생하는 열H(t)과 그것을 식혀주는 바람 세기(W(t))를 떠올리고
기분이 상쾌하다는 것을 마치 두 곡선(함수)의 교점을 찾는 방정식의 해라고 모델링한다.
(가장 단순하게 각각 1차 함수와 상수라면) 교점이 하나이기 때문에 '딱 좋은' 시간이 짤을수 밖에 없다.

 

하지만 H(t)와 W(t)는 서로 관계를 가지기 때문에 이건 연필없이 안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합니다...)

 

 

 

 

 

 

 

 

 

 

 

 

 

 

 

4.

기차예약 중에 좌석을 정하거나 버스에서 자리를 고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때,
출발지와 목적지의 방위를 떠올리며 진행방향과 시간대에 따른 햇빛의 방향을 고려해서 자리를 선택한다.

 

 

좀 더 시간이 주어지거나 이동 방향이나 해의 방위가 복잡해질 경우
머릿속에 여행 시간에 따른 햇빛의 세기변화함수 S(t)를 대략 그려보고
그것을 여행 구간에 따라 적분을 해서  좌석에 따른 '총 햇빛 노출량'을 생각해 본다.

 

 

 

 

 

 

 

 

 

 

 

 

 

 

 

예를 들어

12시에 해가 남중하고 18시에 해가 지는 날
12시부터 여섯시간 동안  지도 상 7시에서 1시 방향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고 단순화할 경우
진행방향 오른쪽으로 앉으면 12시부터 2시간 동안 강한 햇빛을 받게 되고
왼쪽편 자리는 14시부터 18시까지 4시간 동안 좀 더 약한 해가 들어온다.

 

 

좌석 왼쪽창가, 오른쪽 창가에 앉았을 때 각각 햇빛 노출량을 비교하고 자리 선택을 위한 부등식을 세울 수가 있다.

 

물론 창가자리에 안 앉거나 커튼을 치는 방법으로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더욱 무의미하게 만들 수도 있고
그냥 아무데나 내키는 곳에 앉는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할 수도 있다.

 

 

 

 

 

 

 

 

 

 

 

 

 

 

 

5.

시내버스에서 내리는 문보다 뒷쪽에 서 (혹은 앉아) 있다가 내리려는 경우,
버스가 브레이크 밟을 때 차 진행방향으로 가해지는 관성력을 이용해서 '힘들이지 않고' 문까지 전진하며 '에너지를 절약' 했을 때,
나무 한그루 심거나 재활용 제품 이용한 것만큼 보람을 느낀다.

 

 

 

 

 

 

 

 

 

 

 

 

 

 

 

 

 

 

 

0.

고등학교 때는 수학 한과목을 더 배우느냐 정도의 차이였던 이과와 문과의 구분,
혹은 대학의 전공이나 졸업 후의 직업.

 

경계없는 영역에 교육제도가 만들어 놓은 고리타분한 경계선 같기도 하지만,
직업이나 전공마다 요구되는 사고방식대로 반복적으로 훈련되면서
성격과 생각하는 방법이 달라진다는 생각이 들어서 새삼 놀랄 때가 있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공학적인 생각은 여행의 분위기를 해치고 동행자와 불화를 일으키는 최적의 방법 같기도 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사람따라 상황따라 다르기 때문에 일반화할 수는 없는 이야기다.

 

이렇게 주구절절 이상한 예시들을 적어 보았지만,
설령 동행이 있어도 이런 머릿속 생각들을 메모장에만 적어두고 발화하지 않음으로써 불화를 방지하는 것이
어느 상황에서나 '효율을 극대화'를 추구하는 공대생의 이상적인 여행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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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
버스타면 그냥 아무데나 앉아서 모자 눌러쓰고 커텐치는 저는 공학자 동행이 있으면 정말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ㅋㅋ 오늘도 좋은글 감사합니다.
2015-07-02
00:35:55

[삭제]
준수
안녕하세요! 이런 재미없는 글에 호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2015-07-02
11:10:14
에스뗄
재밌는 글인데요..완벽히 이해가 가지는 않지만..ㅋ
이런 계산에 영 제로인 전 공학자 동행 원츄 ㅋ
문득 대학교 1학년때 미팅했던 기억이 떠올라요.
S대 공대생이었는데 전 무슨 우주인하고 얘기하는줄 알았어요.
같은 언어를 쓰는데 서로 이해와 공감이 안되던..
전 S대임에도 제 말을 이해못하던 그가 또 넘 이해 안되고..ㅋㅋ
공대생은 내 타입 아니라며 ..뭐 그랬던 기억이 ㅎ
준수님은 제가 경험했던 그런 공대생 느낌은 아니에요.감성과 이성이 적절히 조화된 분^^
아니라면 제가 이곳에 있지 않을듯 한데요..ㅋ
2015-07-07
12:21:42

[삭제]
관심
저에겐 가장 제 취향에 맞는 여행+글 인데요 ^^ 전 공학도는 아니지만, 나름 경영학도(문학을 배신하고 대학원을 갔다죠 ㅋ)로서
여행의 효율과 효용에 대해 늘 고민하고 부딪히고 갈등하며 걷습니다^^
(출퇴근 때 대중교통에서 관성을 이용하지 못하고 제 몸무게 이상의 힘을 들여 발을 내딛을 때도 패배감을 느낍니다 ㅠㅠ)
준수님의 행보를 참고해서 떠났던 이집트 여행에서, 동행했던 천체물리학도가 바하리야 사막에서 카이로로 돌아오던 버스에서
지평선 너머로 보이는 얕은 신기루를 지긋이 바라보다 노트를 꺼내서 그림을 그리고 숫자를 쓰며 계산을 열심히 하더라구요.
문득 제 여행의 깊이가 저 신기루보다 얕다는 생각에 좌절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인류학자의 여행이나, 문학도의 여행이나, 공학자의 여행이나 더 나은 여행을 꼽는다는게 어리석은 계산이겠지만,
제가 갖고 있지 않은 지식으로, 제가 원하고 고민하는 지점에서 여행을 상상하는 분들의 두뇌속을 탐하곤 합니다 ^^
2015-07-09
11:48:03
김남진
예전 여행기 때 이런 글 몇개 보였던 것 같은데요....
어떤 개념을 배우면 그 개념을 활용해서 세상을 바라보고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있더라구요. 말장난 하는것도 좋고
저도 같은 걸 배우는 친구들이랑 같이 있으면 서로들 그런 개그? 말장난?을 많이 하게 되지요.
사실 위에 공학적이란 말에 좀 더 생각을 해보게 되지만, 뭐 그리 엄밀하게 쓴게 아니라 상징적으로 쓴 것일테고.
헤헤. 재밌네요.

사실 예전글도 보고 이글도 보면, 글쓴이가 고등학교때 수학을 참 좋아했었을 거 같다는 느낌.
히히. 글재주가 없는 저는 대리만족하고 갑니다.

햇빛은 엄밀하게는 지도 경로를 따라 선적분을 해야겠죠.. 점점 계산이 불가능해지겠지만.
아마 경제학자라면, 그걸 계산하는 효용과 그냥 편하게 여행하는 효용을 따져서 판단하겠지요.
저는 요즘 치의학을 배우니, 사람들 얼굴이 hyperdivergent한지 hopodivergent한지 deep bite인지 open bite인지 이런것들이 보이더군요.
2015-07-09
23:37:22

[삭제]
준수
에스뗄님 말씀대로 예술계와 공대는 왠지 상극인 것 같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예술계-공대 커플이 아주 많은 것은 신기하네요ㅎㅎ
극과 극은 통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서로 근본적으로 동화될 수 없는 몇가지만 포기하면 서로 잘 맞는 퍼즐조각처럼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ㅋㅋ
2015-07-10
23:23:22
준수
관심님 얘기에 나오는 물리학도는 무슨 계산을 하셨던 걸까요!!??
자기에게 없는 것을 가진 사람을 보면 부러워지는 것 같네요
저는 특히 여행다니면서 그림 그리는 사람이 제일 부럽더라구요-
2015-07-10
23:28:14
준수
예전 여행기에도 따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여러 장면에서 이런 느낌(?0 드러났었을 거예요.
남미여행기 아르헨티나 중에서 커피맛과 초코바맛은 orthogonality에 대해 쓰고 <지구 반대편...> 책에 실리기도 했는데
나름 저의 '아이덴티티'같은 글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너무 많이 갔다는 사람도 꽤 있었지요ㅋㅋ
좋은 해석 감사합니다. 다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수학보다는 물리를 좋아했다는 점 말고는? 하하하
2015-07-10
23:3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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