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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에필로그: 일상의 관성
분류: 방콕
이름: 준수 * http://www.genijoon.com


등록일: 2015-10-25 23:30
조회수: 1312 / 추천수: 103


누군가와의 마지막,

 

 

 

 

 

 

 

 

 

 

누군가와의 마지막,
혹은 오랫동안 못 볼 것을 알고 있는 이별의 순간
상대의 얼굴을 애뜻한 마음으로 쳐다보며 이목구비를 기억해두려 애쓰는 것처럼

끝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던 장소를 떠나면서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다가
한 번 쯤 다시 뒤돌아 본다.

 

 

 

 

 

 

 

 

 

 

 

 

 

 

 

 

 

한참동안 쳐다보며 덧쓰고 덧그린 감각의 두께,
여러 자리에서 다른 각도로 수많은 사진 속에 담아둔 이 정도의 정성이라면
바다의 생선을 활어차에 실어 산동네까지 산 채로 운반하는 것처럼
지금 이 순간을, 기분을, 느낌을, 미래의 일상 속으로 고스란히 옮겨둘 수 있을 것만 같다.

 

내 머릿속 기억의 아쿠아리움, 가장 중요한 수조에 고이 간직해 두면서
지칠 때, 갑갑할 때면 언제든 찾아가서 하염없이 바라볼 수 있을 거라고.

 

 

 

 

 

 

 

 

 

 

 

 

 

 

 

 

 

가장 마음에 들었던 여행지,
특히 좋았던 여행의 순간,
제일 아름다웠던 풍경을 기억해두려 애쓴다.

줌아웃과 줌인으로 사방을 훑고 클로즈업으로 디테일을 높이며 촬영한 망막의 동영상을
시신경을 지나 대뇌의 어디쯤 장기기억 영역에다가 '저장'해두고 싶다.

 

 

 

 

 

 

 

 

 

 

 

 

 

 

하지만 '저장'해 두려 애썼던 노력들은 일상의 거대한 관성에 바하면 보잘 것 없는 무게일 뿐이라서
일상의 불이 다시 켜지는 순간 흘러가버린 꿈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때의 장면과 감정을, 갖가지 사소한 바람, 냄새, 소리, 온도 등을 떠올리려고 애를 써 보아도
그것은 어려운, 어쩌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사진을 쳐다보아도 무언가 떠오르긴 하는데 영상의 테두리가 뿌연 것이 꿈속 장면인 듯 비현실적이고
그 위에 내 모습을 포개보려 해도 여전히 합성한 사진처럼 어색하기만 하다.

 

 

 

 

 

 

 

 

 

 

 

 

 

 

 

 

 

일상으로의 복귀는 빠르다.

정말 빠르다.

 

 

이렇게 낯선 곳, 낯선 공기, 낯선 자리에 앉아 낯선 맛의 음식을 먹으며 낯선 라벨의 맥주를 마시고 있다보면,
일상에 없는 여유와 느긋함이 당연한 것처럼 매일매일 누리고 있다보면
일상에 돌아가서도 여운이 꽤 오래갈 것 같아서 흡족해지지만
익숙한 환경 속으로 귀환하는 순간 자정이 지난 신데렐라처럼
모든 마법이 해제되고 원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온다.

 

 

 

 

 

 

 

 

 

 

 

 

 

며칠, 몇 주, 심지어 몇 달의 공백이 무색할 만큼 능숙하게 보일러를 틀고 머리를 감고 출근길 지하철을 타다보면
지난 여행의 이국적 풍경과 감각들은 짧은 꿈이었던 것만 같을 때가 있다.

사진을 보면 분명히 가기는 간 것 같은데 내가 여행을 다녀오긴 했던 걸까,
달력에서 여행기간 만큼이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린 듯
인천공항에서 출국하고 입국하던 풍경은 꿈의 첫 장면과 끝장면인 것 같다고 말이다.

 

UFO에 납치되었다가 그곳에서의 기억은 삭제된 채 지구로 돌려보내졌는데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니 실수로 남겨 온 기념사진 한 장이 잡히는 것 같은 기분.

 

 

 

 

 

 

 

 

 

 

 

 

 

 

 

여행이 아무리 길어도 여행은 여행일 뿐,
일상의 무게에 비하면 깃털처럼 가벼워서 쉬이 날아가 버릴 정도다.

 

인간이 만든 물체를 아무리 멀리 쏘아올려도
지구의 중력권을 완전히 벗어나지 않는 이상 금세 땅으로 되돌아오는 것처럼

일상의 관성은 어마어마하다.

 

일상의 인력을 벗어나려면,
그래서 그곳의 삶이 새로운 일상이 되려면
이민이든 유학이든 여행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기껏 여행다녀온 것이 억울하기도 하고 아깝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이있다면
사람과의 이별은 대체로 그때가 마지막인 줄 알지 못하는 반면
여행은 마지막 순간임을 잘 알고 있으니 노력이라도 해볼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그 덕분에 다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떠난다고 해서 여행의 기억이 활어차 속 생선처럼 산 채로 돌아올 리는 없겠지만
일상의 중력장에 의해 왜곡되어 현장의 생생함이나 디테일은 사라지지만 시간이 지나며 중요한 건더기만 남게 되는 여행의 기억이란,
잘 숙성되어 활어회보다 식감도 좋고 감칠맛이 풍부한 선어회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잊을만 하면 다시 월척을 낚으러 바다로 나갈 수 있다고 말이다.

 

 

 

 

 

 

 

 

 

여행도 좋고 일상도 좋다.

떠난 여행도 좋고 돌아온 일상도 좋다.

낯선 장소를 헤매는 짜릿함 만큼이나
그리운 집에 돌아와서 익숙한 물줄기로 샤워를 하고
내 몸에 최적화된 침대에 누울 때의 안락함도 좋다.

 

 

 

 

 

 

 

 

 

 

--------------------------------------------------

감사합니다.

 

태국, 캄보디아 여행기도 이걸로 일단락입니다.
(태국은 왠지 곧 다시 갈 수 있을 것 같아 '일단 일단락'입니다)

그동안 기다려 주시고 '팔로우'도 되지 않는 이곳까지 잊지 않고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행기를 마무리할 때마다 항상 하는 이야기입니다만
혼자 좋아서, 스스로를 위해(!) 쓰는 여행기지만 여러분의 다양한 피드백가 호응이 없었다면
결코 끝을 맺지 못했을 겁니다.

 

몇 주 쉰 후에 지난 봄에 잠시 다녀온 유럽 쪽 여행기 몇 편으로
12년간 여행기가 끊기지 않는 질긴 수명을 이어갈 수 있을 예정입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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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째 너무나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5-10-26
10:37:57

[삭제]
김혜인
준수님 여행기를 보면서 제 여행도 복기도 하고 사진에 같이 젖어들기도 해요.
유럽 여행기 또한 기대할게요.
2015-10-26
12:58:58

[삭제]
준수
두 분 모두 감사합니다!
2015-10-26
15:07:38
관심
일상도 계속, 여행도 계속 이어지듯,
그리고 여행기도 계속 만날 수 있어서 감사드립니다.

여행과 일상이 동전의 양면처럼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해있지 않듯,
올해 즐겁게 본 영화 '인사이드 아웃'처럼 나이가 들수록 기억구슬의 색깔이 단색이 아니라 다채롭게 만들어지듯
(적절한 비유가 아닐지도..)
준수님의 여행기를, 또 일상의 이야기를 만나며
내가 서있는 자리와 내가 걸어온 흔적을 함께 생각할 수 있어 늘 좋습니다. 네 것이며 내 것이기도 한 '사'념을 '공'유해서 감사합니다.
2015-10-27
13:25:50
준수
사적인 감상이 타인과 공유될 수 있고, 공유된 감상이 또 누군가에게 흔적이 된다는 점에서
저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2015-10-28
11:38:45
토끼궁둥이
몇년간 하던 페북도 탈퇴하고, 카스도 거의 뜸하고, 인스타도 하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여기는 끊을 수가 없네요 ^^
10년전에 올리신 유럽 여행기와 이번에 올리실 유럽여행기가 어떻게 다를 지 너무 궁금합니다.
저자와 독자가 모두 달라졌으니 그 새로움과 익숙함이 만들어줄 즐거움을 기대해봅니다.
2015-11-06
15:42:36
준수
반갑습니다!
저는 12년 전과 변함없이 페북도 카스도 인스타도 안 하고 이것(?)만 하고 있는데
그 시간과 경험이 녹아든 여행기가 어떤 느낌이 될지, 타인에게 어떻게 읽힐지 궁금하군요.
감사합니다
2015-11-06
16:58:31
에스뗄
마지막 여행기라 그런지 슬퍼요..흑
내용도 넘 센티하고..막 눈물 날라해요.
예전엔 아주 가끔 들려서 도둑고양이처럼 밀린 여행기들을
쓱 훓고 갔다면 태국여행기부턴 댓글도 달고 답글도 보면서
마치 저도 이 여행기에 주체가 된듯한 착각이 들었나봐요.
그래서인지 저도 이제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가야할
것만같은..하하
한편의 여행기가 완성되기까지 이렇게 오랜시간이 필요한지도
몰랐고 넘 여행에 몰입했나..왜이리 허전한지..
여행도 좋지만 일상도 소중하죠.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

another air plaine another sunny place
i'm lucky i know
but i wanna go home i've got to go home
마이클 부블레 노래들으며 살짝 위로 받는중 ..
2015-11-06
21:15:53

[삭제]
준수
아 '실시간 여행기'는 처음이시군요.
오래 걸리죠잉. 이런 식으로 여행기 마무리 몇 개 했더니 벌써 13년째가 다 되어가고 있어요.
여행기와 같이 여행을 체험해 주셨다니 감사하고 저도 뿌듯하네요!
2015-11-06
22:44:14
임동준
기억속의 '아쿠아리움'.
저도 기록하고 사진찍어놓고 고이 모셔놓은 추억들을 다시한번 떠올리고 그 때 느꼈던 감정과 일들을 적는걸 참 좋아하는데
아쿠아리움이라는 표현이 정말 와닿네요.
나만의 공간에서, 나의 기록과 상상력으로 불어넣어지는 기억의 생명력.....
이러한 준수님의 기억 조각들이 헤엄치는 아쿠라이룸 오늘도 잘 다녀갑니다^^

ps.참 궁금한게 있는데요 혹시 홈페이지 직접 코딩하시면서 운영하시는건가요??
2015-11-07
21:53:28

[삭제]
준수
감사합니다!
동준님의 아쿠아리움에도 갓 잡아온 생선과는 조금 다를지라도 아름다운 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이길 바랍니다ㅎㅎ

음음 질문은 네/아니오로 대답하기에는 조금 애매합니다ㅋㅋ
호스팅 업체와 제로보드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 구조는 포토샵/이미지레디와 웹에디터로 만들었고 가끔씩 아주 단순한 html 코딩으로 수정하곤 하지요.
2015-11-09
15:01:36
은진
준수군 여행기는 오랫만에 클릭했네요.
저도 한때는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싸이월드에라도 여행기를 올리는 재미가 있었는데, 일상에 치여 살아보니 여행기를 읽는 것조차 멀어지게 되었네요.

참 신기한게,
여행지에서의 좋았던 기억도
행복했던 기억도, 또는 아쉽던 기억도
저의 경우엔 인천공항 활주로에 비행기 바퀴가 닿고
사람들이 한명 두명씩 일어나기 시작하고
방송에서 we hope to see you ooo airline soon이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고
핸드폰 전원을 켜도 되는지 고민하는 순간부터
재빠르게 일상으로 복귀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읽은 준수군의 첫 여행기가 지중해였던 것 같은데,
그 다음에 유럽편도 연달아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새로운 유럽 여행기도 기대할께요~^^
2016-01-29
13:46:41

[삭제]
준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반가워요.
비행기라는 비현실적(?) 공간을 나서는 순간부터 여행의 마법 같은 것이 깨끗하게 사라지는 것 같아요.
은진누님 정말 오래된 손님이신데 이렇게 종종이라도 잊지 않고 찾아주셔서 정말 감사하네요!
2016-02-11
12:43:18
  ~의견을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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